지키지 못한 자.
누군가를 베기 위해 검을 들었던 자.
이번에는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하여,
이미 다 낡고 닳은 몸을 이끈 자.
백금지사라 칭해지며 피로 올려진 가문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 결국 아우는 지키지 못했고 어린 날들을 헛되이 보내게 했다. 많은 이들의 미래와, 엮인 실타래를 전부 끊어버렸다.
허나, 꿈 꾸길 바랐으며
돌아오지 않을 것에 매달렸다.
죽음을 흉내내고 죽음을 바라고 그리워 했으며ㅡ
갈구했다. 백이라는 성을 물려받았음을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몸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껍질을 바탕으로 하여 덮여진 하얀은 깔끔할 수 없으며 종극에는 제 실체가 드러나 온통 검게 칠해질 것이니... 아, 역시나 핏줄을 감추지 못하고 희열을 드러내는가. 보호를 명목으로 태어난 이가 누군가를 베어냄으로 살아있음을 느낀다. 제 몸이, 저를 이루는 모든 것이 자리를 돌려달라 외친다. 심장이 자꾸만 가슴을 두들기고 닳아 헤진 손은 여전히 검을 탐한다. 본래 있어야 했던 곳은 그곳이 맞았다는 듯이. 듣지 못한 제 아우의 마지막 말을 감히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죽으라며, 시체조차 찾을 수 없는 나락에 들어오라며. 백의 명을 저버리지 말라며. 白은 여전히 이곳에, 수많은 㡍이 잠들어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며.
항상 귓가에 들리는 속삭임은 이따위의 것들이었다. 지키지 못한 나를 원망하고, 업을 상기시키고, 저 바닥ㅡ 그림자에서 뻗어 나온 족쇄가 나를 휘감는다. 그 탓에, 몸은 방치하고 손에는 붓을 들었다. 지나감에 매어있고, 중한 것은 흘려보내니. 드디어 사는 것과 같았다. 남의 숨을 빌려 쉬었다. 홀로는 도저히 불가하여 남의 것을 탐냈다. 꼴사나웠다.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몸뚱어리가 짐처럼 느껴졌다. 죄인이 평생 이고 살아가야 할 무게가 참으로 야속했다. 원치 않게 태어난 아이. 가문을 이끌어갈 무진ㅡ武盡의 이름은 아들을 위한 것이었다. 백을 이끌 듬직한 이의 이름이 내게 왔던 것이다. 그래, 어쩌면 이것부터 잘못되었지.
백이 원하던 모습이었다면 제 불쌍한 아우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더 많은 이를 살릴 수 있었을 텐데. 白을 견고히 하여 얻은 것이 이런 것이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어둡고 좁은 방에서 적어내리는 회고록은 더 이상 쓸모가 없다.
ㅡ그래. 과거는 불태우고, 속죄를 하자.
가장 찬란할 때 죽는 것이다.
다시 전장으로 나가 이름을 널리 알리고 피를 묻혀 백임을 다시 상기시키고. 얄팍한 숨을 겨우 이어나가다··· 실로 꿰매고 천을 덧대어 만들어진 영웅으로서, 그렇게 산화하자. 저 아래로 홀로 침전하자.
...라고 생각하였는데, 초대장을 받았다. 다과회가 끝나고 돌아갈 즈음에는 다시 한번 자격을 받았다. 백무진이 아닌, 이리로서. 많은 이들에게 약속을 했다. 누군가에게는 지켜준다고 하였으며 다른 이에게는 욕을 시키기도 하였지. 또 다른 이에게는 달리 변질되었을 때 끝을 맺어주겠다고도 하였고. 어느 누구에게는 질문이자 해답이 되었지.
모든 업에서 도망 나온 나약한 자일 터.
ㅡ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랑자. 귀신. 혹은 도피.
이리라는 피의 이명을 달고. 종극에는 지켜냈으리라. 그의 회고록은 이것으로 완전히 끝이었다.
이제는 나아갈 시간이다.
나의 삶을 증명해냈으니, 백의 모든 것을 짊어지고. 완전한 하얀으로 속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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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에 꿈에서 깨어나며 받은 편지를 가만 매만진다. 단 삼 일날의 꿈ㅡ 치유를 위한 꿈.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게 해준 이들, 제가 드디어 지켜낸 이들이 있을 터였다.
" ...나의 하얀. 잠시 백임을 잊게 해준 고마운 이들. "
그러니, 마지막을 장식해야겠지.
과거의 저처럼 흘러간 것에 매달리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누구보다 하얗게 찬란할 미래를 향하게 할 수 있도록!
" 이리 같은 것은 잊고,. 부디 행복하시지요. 평화만이 가득한ㅡ 안녕한 곳에서. "
모든 것이 괜찮을 겁니다.
강인하며, 무엇보다 지혜로운 사람들...
먹을 멀리하고, 하얀을 가까이 하시기를.
작은 먹이 옮아 감히 자리를 탐낼 수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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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 여기서 퇴장이외다!
ㅡ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생애의 끝에 도래한다.
옥색 빛이 도는 검을 쥔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드는 검이 아니었다.
순수히 죄인을 위한 검.
검날이 빛을 받아 반짝이면,
괜스리 누군가가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망설임은 사치이니.
이제ㅡ 정말 끝이다.
"···지키지 못한 이를, 지키러 가옵나이다. "
부디, 모두 안녕하시기를!